불교

[스크랩] 절 구경 다시 합시다 (4)

참신한신사 2012. 2. 19. 19:05

 

절 구경, 다시 해보십시다.

 

다음은 탑(塔)이다.

불탑(佛塔)이야말로 전문가의 지식이 필요하다.

어설픈 상식으로 아는 척 했다간 망신당하기 십상이다.

원래 탑은 석가모니 입적 후 사리를 봉안하여 경배했던 구조물이었다 한다.

그래서 인도의 초기 탑은 경주 왕릉 같은 반구형(半球形) 구조물이었는데 이것이 중국, 우리나라, 일본의 탑양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우리는 우리 석탑에 익숙해 있어서 으레 불탑은 석탑이려니 생각하는데 중국이나 일본을 가보면 그 생각이 잘못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중국의 탑은 전탑(塼塔)이라 해서 벽돌로 지은 탑으로 규모가 대국답다. 시안(西安)에서 진시황릉 다음으로 구경하게 되는 자은사(慈恩寺) 대안탑(大雁塔)은 7층 누각 높이가 45m라든가 54m라든가? 아무튼 높다.

경주 분황사 탑이 전탑 양식인데 3층만 남았어도 9m가 넘는 것으로 보아 중국의 영향을 받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일본의 탑은 목탑(木塔)이다. 담징의 벽화로 유명한 호류지(法隆寺)에는 금당과 나란히 5층 목탑이 서 있는데 그 규모가 법주사 팔상전만하다. 사찰 경내에 가장 높은 건축물은 다 목탑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우리나라는 석탑(石塔)의 나라요, 중국은 전탑(塼塔)의 나라, 일본은 목탑(木塔)의 나라란 말을 한다. 한마디로 주 탑재(塔材)가 나라마다 달랐다는 것이며, 우리나라는 질 좋은 화강석이 많아 석탑이 많이 보존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현전하는 불탑이 천 개가 넘는다고 들었다. 이 많은 탑들이 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것 같아도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크기, 구조, 형태, 재료가 시대 유형을 따라 달리 축조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석탑은 그 구조가 기단부(基壇部), 탑신부(塔身部), 상륜부(相輪部)로 나뉘어진다. 초보자가 탑 앞에서 하는 일이 층수를 세는 일이다.

층수를 세다 보면 짝수 층이 나올 수도 있는데 이것은 탑신과 기단을 구분하지 못한 까닭이다. 탑신부의 옥개석 끝을 연결하여 일직선에서 벗어나는 것은 층수에 넣지 않는 것이 기본 상식이다.

물론 짝수층 탑도 몇 개 있긴 하다. 경복궁에 옮겨진 경천사 10층 탑과 그 모방작인 탑골공원 소재 국보 2호 원각사지석탑은 10층이다.

 

탑을 보려면 밑에서 위로 올려 보는 방법이 좋을 듯싶다.

기단이 일층인가, 이층인가부터 먼저 살피자. 탑신부는 옥개석이 몇 층인가. 옥개석은 판석으로 되었는가, 지붕 모양인가. 옥개석 밭침은 몇 개인가. 옥개석이 하나의 돌을 다듬은 것인가, 벽돌 쌓듯이 층을 이루었는가.

탑신(옥신)이 각 층마다 일정한 높이인가, 아니면 일정한 비율로 높이가 줄어드는가. 탑신은 하나의 돌인가, 우주(隅柱:모서리기둥)를 별개석으로 세웠는가. 우주 사이에 탱주(撐柱)가 있는가. 탑신 면석에 특별한 부조가 있는가.

상륜부에는 어떤 장식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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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석가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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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가 전문적인 것 같으나 처음부터 다 알려하지 말고 한 부분 한 부분 눈에 익혔다가 비교해 보면 차이점이 드러나게 된다. 차이점을 발견하게 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세밀하게 하는 것이 아는 즐거움이다.

아, 저 탑은 옥개석 받침이 다섯 개니 통일신라 때 축조된 것이 아닐까 하고 탑 앞에 안내문을 읽어보니 과연 그랬다면, 혼자 쑥스럽게 즐겁다. 이게 아마추어의 기쁨이다.

너무 많이 알아도 대수롭고, 너무 몰라도 데면데면하다. 조금만이라도 지식을 갖춘 상태에서 화엄사 사사자(四獅子)3층 석탑을 보았다면 그렇게 쉽게 이 탑 앞을 떠나진 않았을 게다. 2층 기단의 우주를 대신하여 4마리의 사자상으로 탑신을 떠받친 모습에서, 다보탑에서 느꼈던 감동을 다 시 한 번 맛보 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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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화엄사 사사자석탑

 

 

일제 때 엉터리로 보수된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목탑에서 석탑으로 전환되는 시기의 최고(最古)의 석탑으로 알려져 있다.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시원(始原)이 된다는 감은사지 쌍탑, 신라 최고(最高)의 탑이라는 충주 중원탑, 특수형 석탑으로 이름난 월정사 8각9층 석탑과 불국사 다보탑, 앞에서 언급된 고려시대의 명품 경천사 10층석탑은 모두 국보급 우리 문화유산이다. 이 외에도 화순 운주사의 원형, 원구탑이 특이한 모습으로 기억에 남는다.

 

법당 앞에 놓여 있는 또 하나의 석조물에 석등(石燈)이 있다.

석등도 불탑 못지않은 예술미를 지닌다. 웬만한 분이면 법주사 쌍사자 석등을 기억해 내시리라. 석등도 그 기본 구조는 석탑과 거의 같다.

하대석 위에 기름한 중대석[竿石]을 하나 세우고, 그 위에 화사석(火舍石:불을 밝히는 부분)을 얹고, 그 위에 옥개석을 씌우는 형식이다. 하대석은 원형에 연꽃무늬로 장식하고 옥개석은 팔각지붕 형식이 제일 많은 듯싶다.

 

그 외에 법당 석축 아래 괘불석주(掛佛石柱)가 있는 곳이 있다.

얼른 보면 당간지주(幢竿支柱)와 비슷하지만 당간지주는 사찰 전면에

당(幢:부처의 공덕을 표시하면서 사찰의 위치를 알리는 일종의 깃발)을

걸기 위한 것이고 괘불석주는 괘불을 걸기 위한 것이다. 한마디로 국기게양대 같은 것이다.

당(幢)은 이 절에 대덕스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으나 당간은 많이 없어졌고 그 지주석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공주 갑사에 신라 때 제조된 철당간이 남아 있다. 당간의 생김새가 대나무 같아서 처음에는 대나무를 모방했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철통을 이은 마디가 대나무 마디처럼 보인 것이다.

괘불은 일종의 탱화(幀畵)로서 부처의 형상을 그림으로 그려 법당 밖에 내다 거는 불구(佛具)이다.

영산회상도 등 각종 불상을 주로 수를 놓아 그리는데 큰 괘불은 가로 세로가 10m가 넘는 것도 있다고 한다. 평소에는 보기 힘들고 의식이나 큰 재가 들었을 때 법당 앞에 내걸린다.

 

법당 앞의 탑을 구경하고 여러 전각을 돌고 나면 강당 옆에 범종각(梵鐘閣)이나 범종루(梵鐘樓)를 만난다.

범종각에는 범종이 걸려있는 게 당연하지만 범종 외에 사물(四物)을 같이 걸어둔 곳이 많다. 불교에서 사물이란 범종(梵鐘), 법고(法鼓), 운판(雲版), 목어(木魚)를 이른다. 이들은 예불이나 의식에 쓰이는 일종의 타악기로서 상징하는 바가 각기 다르다.

 

범종은 이승은 물론 저승의 중생(衆生)까지 제도(濟度)하고, 법고는 온갖 짐승을, 운판은 날짐승을, 목어는 물고기의 영혼을 구제한다고 한다. 산사에서 하룻밤을 묵어본 사람이면 새벽 어둠 속에 울려 퍼지는 범종 소리가 얼마나 영혼 깊이 스며드는가를 느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느 스님이 말하기를 범종의 입구가 아래를 향한 것과 종 아래 확을 만든 것은 지옥까지 종소리가 들리도록 한 것이라고 했는데 황당한 얘기지만 그러려니 하고 들으면 재미있다. 법고가 양쪽에 각각 암수 한 마리씩의 소가죽을 통째로 써야 북소리가 좋다는 얘기도 그럴 듯하다.

 

특히 사물 중에 범종은 우리나라 금속공예 예술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잘은 모르지만 용신(龍身)의 종걸이, 대나무 모양의 음통(音筒), 종의 어깨 부분의 36개의 젖꼭지, 그리고 그 유명한 공양비천상(供養飛天像)과 종 아래 부분의 연화 무늬가 중국과 일본 종에 구분되는 특징이라 한다.

 

모스크바 크렘린궁 안에서 ‘종의 황제’라는 종을 본적이 있다.

높이 6.1m, 지름 6.6m, 두께가 30cm가 넘는 이 종은 비록 일부가 깨져 떨어져 나갔지만 이름 그대로 거대한 종이었다.

그러나 bell 모양의 이 종은 교회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범종에서처럼 예술적 감흥이나 종교적인 신비감 같은 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었다.

나는 그것이 하나는 노동자가 만들었고, 하나는 구도자(求道者)가 만든 차이라고 생각했다. 무영탑[석가탑]이나 에밀레종[성덕대왕신종]에 얽힌 전설은 그냥 전설이 아니라 선인들의 영혼의 흔적이다.

석탑이나 범종 만이겠는가? 건축하는 사람, 불상을 만드는 사람, 단 청을 하는 사람, 탱화를 그리는 사람 등등. 이들은 자신의 작업을 통해서 성불하겠다는 구도자적 발원심(發願心), 바로 상구보리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위로는 보리심을 구하고 아래로 중생을 제도한다)의 심오한 정신을 예술로 구현한 장인(匠人)들이었을 것이다.

언제 오대산에 다시 가면 상원사 동종을 찬찬히 살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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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상원사 범종

 

자, 이제 얼추 절구경이 끝난 셈이다.

요사채(寮舍:스님들이 거처하는 곳)는 기웃거리지 않는 것이 예의이니 수조에 넘치는 약수 한 바가지로 목을 축이고 암자가 있는 오솔길로 걸음을 옮겨 보자. 절 외각의 부도(浮屠)밭에도 눈길 한 번 던져주고,

내가 걷는 이 길을 몇 백년 전에 누가 걸었을까 생각하면 삶에 찌든 마음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어 좋다.

 

사찰은 우리나라 국보급 문화재의 대부분과 많은 보물, 유형문화재를 간직한 곳이다. 이제 사찰은 등하산 길에 다리쉼 겸 눈요기하는 곳이 아니라 문화 유산을 순례하고 감상하는 곳으로 인식되어야겠다.

그래야 문화재 관람료가 아깝지 않지.

 

                                                                                               

(일본인은 여행중에 반드시 메모하는 것을 봅니다.절에 관한 몰랐던 상식을 배우면서 여행떠나면 더 유익할 것 같습니다 )

 

출 처: 세심사-섬진강 아침안개에 마음을 씻는 기도도량 / 카페 / 심터 / 2009.05.14 [원문보기]

출처 : 이 재의와 함께 하는 삶의 이야기
글쓴이 : 노루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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