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글에 얽매여 실상을 못보면 덫에 걸린 것

참신한신사 2007. 12. 12. 22:50
.. 부처님께서는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려라.”고 하셨다.
이 세상에는 강을 건너신 분들의 뗏목, 즉 가르침이 많이 남아 있다.
그렇지만 그 뗏목들은 강 이쪽의 것이 아니라 강 저쪽의 것이다.
손짓을 해서 부른다고 건너편 뗏목이 내 앞으로 오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의 뗏목을 스스로 만들어 건너야 한다.
나의 뗏목이란 무엇인가. 내 참 마음이 나의 뗏목이다.
모든 것을 나의 근본에다 맡기고 가는 것이
나의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너는 것이다.

경을 보되 그 경에서 참뜻을 놓치는 사람은
마치 창 밖의 꽃을 보고 유리에 머리를 부딪치다 죽는 벌과 같다.

말에는 한계가 있다. 글에도 한계가 있다.
우선 바로 알지 못하기 쉽고, 설사 바로 안다고 해도
사물의 이치는 너무 세세하므로 다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을 듣되 마음으로 들어야만 한다.
비유하자면 경을 읽는다는 것은 나무의 잎새를 세는 것과 같고
경배한다고 함은 나뭇가지를 만지는 것과 같다.
부처님게서는 잎새와 가지를 말씀하심으로써 뿌리가 있다는 사실을 일러주셨다.
고로 뿌리에 물을 주어야 한다.
뿌리가 아니라면 나무는 죽는다.
꽃 피고 열매 맺는 도리도 뿌리에 있다.
일심으로 뿌리에 물을 주어야 한다.

금강경을 달달 외웠다 해도 무위법의 뜻을 모르면
글자만 보고 따른 것이지 부처님의 참뜻을 따른 게 아니다.
불교는 행이다. 경·율·론 삼장이 모두 행을 위한 설명인 것이다.
팔만 대장경을 모두 다 배우려면 재능 있는 사람도
20년이나 30년쯤 걸릴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짧다.
고로 곧바로 마음 닦아라 하는 것이다.

주장자가 서서 자유로움을 느끼게 되었을 때는 경전을 보되
반야심경, 금강경, 법화경, 화엄경 등을 보아라.
내 마음을 바로 밝혀 역력하게 나를 보았다면
옛 성현들이 말해 놓은 가르침의 방편을 참고해도 된다.
경으로 보되 보지 않고 경을 보지 않되 보라고 하는 것은 그런 의미이다.
내면 세계의 참 자기를 알고 보아야 경전을 보더라도
글과 백지를 둘 아니게 거머쥐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이 올바로 안다면 과거에 선조들이
그렇게 많은 방편과 설법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부처라는 이름조차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알지 못하니까
설법도 하고 염불도 있어야 하고 촛불도 밝혀야 했다.
현재도 그러한 방편 법을 다 따르는 게 예의로 되어 있지만
그 뜻을 바로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비단이 개발되어 진작에 유통이 되고 있는데
무명 짜는 방법을 고집하는 격이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요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불의 길을 가르쳐 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방편을 덧붙여 짐이 되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로케트 타고 날으는 세상에 차도없어서 걸어가던
그때의 그 걸어간 얘기를 계속해야 할 것인가.

팔만 대장경에 문자로 기록되어 있어서 진리가 아니다.
병풍 둘러치듯 지금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 게
팔만 대장경의 근본이자 진리인 것이다.
그러므로 돌아가는 실상 속에서 즉설이 되어야 하고
즉행(卽行)이 되어야만 즉여(卽如)라 할 수 있다.
그러기에 말 한마디 인도하기가 쉽지 않다.
스스로 실상 속에서 터득을 해야 자신이 들어가 본 곳에
남도 끌고 들어갈 수 있듯이 피안의 길을 인도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물의 깊이를 알지 못했을 때는
고작해야 시늉만 내는 길잡이가 될 뿐이다.

경전이란 이 세계를 말해 놓은 것이다.
그런데 경전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경전을 보느라고
실상을 보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예전의 선사 중에는 수좌들에게 처음에는
오히려 경전을 보지 못하게 하신 분도 있었다.
경 속에 빠져 헤어나지 못한다면 경전 벌레밖에 될 게 없다.

역대 부처님들이 방편으로서 수많은 말의 덫을 놓았지만
그렇게 가르치고자 한 뜻을 가벼이 볼 수는 없다.
흔히들 겉핥기에 치우쳐서 ‘본래 공인데 있기는 뭐가 있으며
붙을 데가 어디 있느냐’ 하지만 함부로 그렇게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참으로 그것을 느낀 사람이라야만이 서슴없이 그렇게 할 수 있지,
느끼지 못한 사람이 흉내나 낸다면
그 업은 수억겁을 거쳐도 벗기 어렵다.
그러기에 나로부터 상구보리 하화중생해야 한다.
내 몸 속에 있는 그 의식, 마음들을 한마음으로 뭉쳐서 요리한다면
그때에 바깥으로 남을 유익하게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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